
비만은 이제 단순한 개인의 건강 문제가 아닌 세계적인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. 풍요의 재앙이라 불리며 신빈곤 또는 위장된 결핍으로도 정의되기도 하는데요. 역사를 돌아보면 비만의 인식과 그 원인, 그리고 현재 비만 치료제가 초래하는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까지, 우리의 일상에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.
1. 비만의 역사와 인식 변화
- 비만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체중 관리의 문제가 아닌 역사를 통해 그 의미가 변해왔습니다. 선사시대에는 사냥과 채집을 통해 음식을 얻기 어려운 환경에서 비대한 몸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. 이런 이유로 비만은 생존력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지만, 농업혁명이 도래한 후부터 비만은 점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.
- 대표적인 예로 '빌렌도르프의 비너스'라는 구석기 시대 유물에서는 풍요와 이상적인 여성의 상징으로 풍만한 몸매를 표현하고 있는데요. 이는 당시 사회에서 비만이 상류층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것을 보여줍니다.
- 하지만 고대 문명에 이르면서 과도한 몸무게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생겨났습니다. 히포크라테스는 이미 그 시기에 살찐 사람들이 급사하거나 임신이 어렵다는 사실을 제시했죠. 그러다 중세 시대에는 기독교 가르침에 의해 탐식이 죄악시되며 비만은 도덕적으로도 부정적인 이미지로 덧입혀지게 되었습니다.
- 20세기 이후에는 과학이 발전하고 질소비료가 대량생산되며 식량이 풍부해졌습니다. 이로 인해 음식 섭취의 불균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, 비만은 부유층에서 서민층으로 중심이 이동하게 되었습니다. 비만이라는 개념은 이렇게 진화하며 각 시대마다 다른 사회적·경제적 의미를 가진 채 변화해왔습니다.
2. 비만과 팬데믹의 관계
- 최근의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사회에서 비만 문제를 다시금 조명하게 만든 사건 중 하나였습니다. 팬데믹 동안 외부 활동의 제한과 배달 음식의 급증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비만율이 상승했습니다. 특히 재택근무와 활동량 감소 등은 비만 증가를 가속화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.
- 비만은 단순히 체형의 문제를 넘어서 심각한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. 연구에 따르면 비만은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증가시키며, 백신의 효과를 저하시킬 가능성까지 제기되었습니다. 이러한 점에서 비만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야기되는 방대한 사회적 비용까지 우려하게 만듭니다.
- 비만과 팬데믹을 연결 짓는 것은 과장처럼 보일 수 있지만, 실제로 WHO와 CDC 같은 기관에서도 비만 증가가 이 시기에 심각해졌음을 강조했습니다. 이는 단순히 건강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한 관심사로 떠오르게 했습니다.
- 비만은 이제 '새로운 팬데믹'으로까지 불리며,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개인의 노력에 의존하기보다는 사회적 차원의 접근법이 필요한 상황입니다.
3.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비만 격차
- 비만은 경제적 요인에서도 큰 영향을 받습니다. 고소득층은 비만율이 점차 낮아지는 추세인 반면, 저소득층은 높은 비만율을 보이고 있습니다. 이는 건강한 식품의 가격이 높아 저소득층에서 그러한 식품을 섭취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.
- 질 낮은 가공식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은 저소득층의 비만을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. 특히 시간이 부족하고 자기 관리를 할 여력이 없는 저소득 가정의 경우 소아비만 문제까지 겹쳐지며 건강 악화가 심화되고 있죠.
- 실제로 한국 질병관리청의 비만유병률 자료에 따르면, 저소득층의 비만율은 약 40.3%로 고소득층의 32.8%를 크게 웃돕니다. 이 수치는 여성에서 더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기도 합니다.
- '날씬함'이 현대사회에서 부와 건강의 상징이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.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기 위해선 적지 않은 경제적 여유가 요구되며, 결과적으로 빈익빈 부익부의 문제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.
4. 새로운 비만 치료제와 경제적 불평등
- 최근에는 비만 치료제가 의학계의 화두로 떠오르며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. 대표적으로 노보노디스크의 '위고비(Wegovy)'는 실제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일론 머스크 같은 유명 인사들이 효과를 본 약물로 알려져 있습니다.
- 하지만 이러한 치료제는 기존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. 위고비의 경우 주 1회 주사를 기준으로 한 달에 약 2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들며, 이는 고소득층만 접근 가능한 가격입니다. 한국에서도 병원에 웃돈까지 붙을 정도로 약물 수급이 어렵다고 합니다.
- 비만 치료제는 효과적이지만, 저소득층이 이용하기엔 현실적인 장애 요소가 많습니다.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약물인 만큼 비만을 치료할 경제적 능력마저 계층별로 차이가 나는 상황입니다.
- 영국 등의 일부 국가에서는 고도비만 환자 대상으로 건강보험 적용이 이루어지고 있지만, 여전히 비만 자체를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인식과 높은 약물 비용은 이 제도의 전면 확대에 한계를 느끼게 합니다.
5. 비만: 신빈곤과 위장된 결핍
- 비만은 더 이상 풍요의 상징이 아니라 '신빈곤' 또는 '위장된 결핍'으로 불리고 있습니다. 이는 열량 섭취는 과잉이지만 양질의 영양소는 부족하다는 현대사회의 아이러니를 대변합니다.
-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도 과체중 또는 비만 문제가 늘어나고 있으며, 이러한 지역에서는 여전히 저체중 아동 문제 또한 심각합니다. 이는 빈곤과 비만이 한 사회 내에서도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.
- 음식은 많지만 좋은 음식은 소수만 누릴 수 있다는 이중적 상황은 명백한 빈곤의 축소판이라 볼 수 있습니다. 빠른 식사 문화, 디지털 시대의 좌식 생활, 그리고 저렴한 가공식품의 범람은 비만 문제를 더 이상 단순히 개개인의 문제로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.
- 결국, 비만은 건강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요구합니다. 균형 잡힌 식단과 함께 건강에 투자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비만 문제는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큽니다.